| 십정동 전경. 멋대가리 없는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 |
인천일보와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도시유목2'를 떠난 인천도시문화탐사대(탐사대장·민운기)는 지난 1∼3일 산업화로 떠밀린 사람들이 모여 터전을 이룬 십정동을 탐사했다.
독특한 건축물. 공간의 한계를 지혜롭게 해결하다 보니 독특한 형태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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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지만 정겨운 십정동
탐사대가 찾은 십정동 216번지 일대에 대한 첫인상은 '아늑하다'는 것이었다. 완만한 야구장 같은 둥근 능선 안쪽으로 가옥들이 빼꼭히 들어서 있는 것이 지난하지만 모종의 일체감을 드러내주는 것 같았다.
마침 날씨가 따뜻해져서인지 곳곳에 동네 어른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골목에서 뛰어 노는 해맑은 아이들 모습이의 정겹기만 하다.
십정동은 산업화와 더불어 곳곳에서 사람들이 떼밀리거나 자발적으로 이곳으로 들어와 터를 잡아 형성된 곳이었다.
동네 중간에 시장이 형성되고 사람들이 붐비며 한 때 활기가 넘쳤던 십정동의 모습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점점 더 가중되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10년 가까이 지속된 이곳에 대한 재개발 문제로 주민들은 더 이상
현재의 삶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집을 팔고 타지로 이사를 가거나, 외지인이 집을 사고 비워놓는 경우 등으로 곳곳에 빈집들이 눈에 띄었다. 비가 와서 지붕에서 물이 새도 집수리도 못하고 '그날'(?)만을 기다리는 실정이었다.
| 벽화그룹 '거리의 미술'이 이곳의 아이들과 함께 진행했던 열우무길 프로젝트의 한 장면. | |
# 재개발 초읽기에 들어간 십정동
십정동은 한때 주민들 간의 돈독한 정과 자생적인 노력을 발판으로 타동네와 차별화된 문화를 일구어오던 곳이었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맡아서 교육을 담당해왔던 해님 공부방은 '열우물 소식'이라는 제목의 소식지를 발간하며 십정동 주민들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해왔다.
그리고 명절과 같은 기념일에는 자체 행사를 기획하여 정기적으로 마을 잔치를 열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퇴색한 담장과 건물 벽을 활용, 벽화 작업을 통해 동네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려 했던 거리의 벽화 팀들이 수년 째 활동해 온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불어 닥치고 있는 아파트 개발 열풍이 이곳을 비껴가지는 못하였다.
얼마 전 이곳 또한 '십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구역'으로 결국 지정됐다. 이에 따라 십정 2구역은 조만간 사업 시행사를 선정한 뒤 심의, 평가를 거쳐 올 하반기 사업시행인가 최종 승인을 받게 된다.
정비계획에 따르면 기존 노후 건물이 모두 헐리고 대신 총 3천여 세대의 아파트가 건립될 예정이다. 말이 '정비'이지 실질적으론 모든 것을 뭉개고 다시 짓는 전면 개발인 것이다.
# 대안적 도시 디자인
사실 재개발은 이미 시작되었다. 십정동을 둘러싸고 마치 병풍처럼 고층아파트가 들어섰거나 현재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서 탐사대는 과연 이것만이 도시 재개발의 유일한 대안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동네 주민들이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적응하고, 개선해나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내는 모습 속에서 도시 개발의 새로운 모델들을 추출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십정동 곳곳에는 이러한 그들만의 창조적 능력과 디자인 감각이 녹아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높은 경사도를 지닌 공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역이용한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건축구조물이나, 오가는 보행자들의 연령대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여 2중 3중으로 재차 덧대어져 완성된 계단들은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도시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자치단체나 사업 관련자, 전문가들은 이러한 십정동에서 진정한 도시 재생의 철학과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 |
# 행복한 꽃밭 만들기 프로젝트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십정동 주민-되기'를 시도한 탐사대가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텐트를 쳤던 빈터를 활용한 '꽃밭 만들기'였다.
마치 우리가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 자리에 우리의 마음이 땅을 녹이고 싹을 움트게 하여 꽃이 피어나듯이 십정동 및 동네 주민들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자 한 시도한 것이었다.
작업은 빈터가 몇 년째 방치되다 보니 자갈과 집의 파편, 쓰레기들이 뒤엉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모여든 동네 아이들과 일부 할머니들의 합세로 꽃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완성된 꽃밭에는 장판지를 활용하여 아이들이 직접 꽃밭 이름을 써넣었고, 마지막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날의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탐사대는 이 작은 꽃밭을 통해 이곳 십정동이, 재개발로 철거되는 날까지 마냥 방치되는 시효가 소멸된 공간이 아닌, 지속적으로 가꾸고 보듬어야 할 애정 어린 곳이라는 생각을 주민들이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남기며 다음의 탐사 지역으로 떠났다.
*후기 : 십정동을 떠난 이틀 후 만수동 탐사 중 갑자기 불어 닥친 비바람에 탐사대의 안전보다는 그곳이 걱정되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혹한에 모종이 견뎌낼까 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이후로도 계속되는 꽃샘 추위에 더 이상의 기대를 포기하였다.
돌이켜보니 좋은 뜻으로 시도한 '꽃밭 만들기'가 오히려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괜한 상처를 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도시유목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는 대로 탐사대는 다시 십정동을 찾기로 하였다. 얘들아! 더 이쁜 꽃 사가지고 갈테니 조금만 기다려~.
/글·사진=인천도시문화탐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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