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자료실

제발, 그냥 좀 놔두세요!

신촌지킴이 2009. 8. 7. 12:56

제발, 그냥 좀 놔두세요!
백련산, 홍제천 근처에서 본 '눈 버릴' 풍경들
 
조혜원
 
 
며칠 전, 가까운 산에 올라갔다. 오후 세시 넘어 집에서 나가는 길인지라,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 산, 차비도 아낄겸 걸어서 갈 수 있는 산을 골랐다. 집에서 삼십분 즈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그 산 이름은 '백련산.'
 
그렇게 가까운 곳인데도 가본 지도 벌써 한참이다. 일년도 넘었나 보다.
 
백련산 밑자락에 있는 시장 풍경을 보며 '그대로네~' 하며 오랜만이라는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백련산  근처로 가까와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에 깜짝 놀랐다.
 
▲     ©이수현
공사판이라도 벌어졌는지 불도저가 보이고, 건물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다. 기분 전환 할 겸 산뜻한 마음으로 산과 만나려던 자리에서 벌어진
살벌한 풍경에 어이가 벙벙했다. 차근차근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씩 올라가보니 이 살벌한 풍경이 나온 배경을 금방 알 수 있었다.
 
▲     © 이수현
웬 경축? 그렇다. 내가 발딛고 선 자리는 응암 제8구역 재개발 지구였던 것이다. 한양주택에서, 북한산 가는 길목들에서 이미 익숙하게 보아왔던 끔찍한 재개발의 흔적들. 아무 생각없이 도착한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왔다.  
 
▲     © 이수현

 
▲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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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하게 허물어진 집들, 그리고 허망하게 남은 집터들. 무참하게 헐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멀쩡한 집들.
 
'관리처분 계획인가'를 경축한다는 현수막이 걸리기 전만 해도 저 곳에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벼운 발걸음들이 가득했을 것이다. 지금은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 쓸쓸한 곳이 되버렸지만.  
 
▲     © 이수현
고철들이 가득 쌓여있는 모습. 멀리서 보면 꼭 취나물 말린 뭉치들을 쌓아놓은 것만 같다.
 
▲     © 이수현
건물을 헐기 전, 사람들이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집 안 여기저기를 부수어 놓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벽이며 가구들이 멀쩡한 곳이 많다.
어떤 곳은 내가 사는 집 벽지보다 깨끗한 곳도 있었다.
 
깨끗한 벽지와, 가구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우릴 부수지 마세요. 우린 아직 멀쩡하다구요!" 
 
▲     © 이수현
여러 가구가 모여사는 한 주택가 벽에는 저렇게 연탄 쓰레기가 밖으로 밀려 나와 있기도 했다. 쪽방이 아닌 걸로 봐선, 연탄을 때는 이런 집들은 지은 지 꽤 된 것도 같다. 그래, 어떤 집들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재개발이 필요하긴 했을 거다. 그러면, 그 집들만 보수를 하건, 다시 지으면 되는 거잖아? 꼭 다 싸잡아서 멀쩡한 집까지 부수고 없앨 필요는 없는 거잖아? 
 
▲     ©이수현
어렴풋한 기억으론 저 불도저가 서 있는 근처 길을 타서 산으로 올라갔던 것 같다. 하지만 저쪽으론 올라갈 방법이 없었다.
 
처참한 풍경들에 마음이 복잡했지만 오랜만에 나선 길 그냥 돌아갈 순 없기에 빙 돌아서 산과 만날 수 있었다.  
 
▲     © 이수현
돌아서 간 길, 공사 장면들은 여전히 가깝게 보인다. 곧 있으면 계단식 논처럼 보이는 저 메마른 땅에 아파트가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     © 이수현
백련산은 많이 낮기 때문에 특별히 쉬지 않아도 금방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었다. 산 밑으로 거의 내려왔을 때 북한산 쪽을 바라보니 대남문, 인왕산, 족두리봉이 보인다. 은평구에 사는 덕에 그래도 자주 가보았던 곳들. 
 
▲     © 이수현
이 봉우리 저 봉우리 이름 짚어가며 살피던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갑자기 딴 세상이다.  저 멀리 남산이 보이고 그 밑으로 죽 아파트 촌이다. 정말 성냥갑처럼 보이는 저 많은 아파트들. 바라보기만해도 숨이 막히는 저 공간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버둥을 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굴고 있는지. 산에서 빨아들인 맑은 공기들이 갑자기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걱정도 밀려온다. 그나마 행복한 눈으로 바라본 바로 위 산 풍경들이 바로 이렇게 바뀌어 버릴까봐.  
 
▲     © 이수현

아파트 촌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산 밑으로 내려와 홍제천 길을 걸었다.  그런데 곧바로 내 눈을 더럽히는 장면을 만나고야 말았으니.
인공 분수대를 설치하는 모습이다.
 
저 자연스러운 바위 산을 인공폭포로 뒤엎을 요량인가 보다. 천 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뾰족한 분수대들을 바라보자니 무슨 총 같기도 하고, 섬뜩하다. 저 모습도 머지 않아 인공 물로 감춰버리고 물 위로 천연 색을 자랑하는 물길들이 뿜어나오겠지.
지나는 사람들은 마냥 멋있다고 그 모습을 바라볼 테고. 저 뾰족한 분수대를 먼저 본 사람이라면, 아마 천연색 분수 물길에 감탄만 내지르긴 힘들 테다. 자연을 짓밟고 나오는 인공 물길, 감탄은 커녕 경악해야 마땅한 일일 테니.   
 

▲     © 이수현
못볼 걸 본 듯 하여 얼른 발길을 돌리는데 또 다시 만난 풍경. 물레방아하며 나무 집까지. 홍제천을 무슨 공원이라도 만들 생각인 걸까? 저 모습이 예쁜가? 난 전혀 안 그런데. 그냥 겨울 느낌 그대로 메마른 나무들, 그 가운데 조금씩 돋아나는 푸른 기운들 그대로를 보는 게 나한텐 가장 아름다운데. 왜 저런 것들을 만들어서 자연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가로막아 버리는 건지.
 
백련산 근처에서 더렵혀진 내 눈 백련산에서 조금이나마 씻어내고 왔건만 이렇게 홍제천이 내 눈을 다시 더럽히고 있었다.
 
정말이지 큰 소리로 외치고만 싶다.
 
"제발, 제발 있는 그대로 좀 놔두세요! 집이건 천이건 산이건, 자연이건.
 건드릴수록 망가질 뿐이에요. 자연도 우리네 삶도!"
기사입력: 2008/12/29 [09:06]  최종편집: 1970/01/01 [09:00] ⓒ 은평시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