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스크와 빨간 조끼를 착용한 10여명이 유리가 깨졌지만 멀쩡한 빌라 옥상에 올라서 덩치가 좋은 남자들을 향해 “꺼져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내 옥상에 함께 있던 네 살배기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 바지를 잡는다. 하지만 함께 옥상에 있던 서너명의 아주머니들은 눈으로 흘겨 볼 뿐 무의식적인 손놀림을 계속한다.
이들은 하나에 15원 하는 부품의 암수를 결합하는 부업에 빠져 있다. 또 한쪽에는 60, 70세 돼 보이는 노인들이 빨간 조끼를 입고 자신이 살았던 동네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가스통·벽돌·나무 상자·부업 도구·가스레인지 등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빌라 옥상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은 파랗다. 11월 7일, 유난히도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철거민들은 이렇게 하루를 이겨내고 있었다.
이들은 부평구 부개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안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이다. 대한주택공사 인천지역본부에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지난 4일부터 빌라 옥상에서 싸우고 있다. 부평6동 643번지와 부개1동 445번지 일원 8만3788.5㎡(2만5346평)의 부개지구는 오는 12월 부분적인 철거작업을 시작으로 본격 개발에 들어갈 전망이다.
9일 주공 인천본부에 따르면, 현재 부개지구는 토지보상 95%, 건물보상 90%가 이루어진 만큼 늦어도 12월부터는 비어있는 집부터 철거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부개지구는 지난 2002년 1월 2일 주거개선환경사업지구로 지정, 2003년 9월 주공이 사업시행자로 선정됐다.
주공 인천본부는 2003년 12월 사업승인을 얻어 2005년 10월 28일 보상계획 공람공고를 실시하고, 그 이듬해 9월까지 토지와 건물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하고 10월부터 보상협의에 들어갔다. 주공 인천본부는 내년 4월 공사에 착수해 오는 2010년 말까지 공동주택 1062호를 건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빠듯한 계획으로 준공시점은 더 늦춰질 수 있다.
이곳은 십정2지구와 함께 부평의 마지막 남은 주거환경개선 사업지구로, 40년 전부터 정착한 낡은 가옥들이 많은 곳이다. 그렇다보니 월세 보증금 100만~200만원을 내고 사는 맞벌이 부부와 노인들이 많다.
옥상투쟁에 나선 세입자들은 주공의 보상 기준일인 2001년 10월 1일 이후에 사업지구로 이주했다는 이유로 보상 대상자에서 제외됐거나 주공이 짓는 임대주택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당장 이들이 갈 곳은 없다. 주공에서 보증금 4000만~5000만원 하는 임대아파트를 제안하기는 했지만, 가진 돈이라고는 고작 몇 백 만원이 전부인 이들이다. 또한 30, 40만원 하는 월세와 보증금까지 감수하기에는 힘들다. 거기다 자녀들의 전학과 생계 터전에서 멀어지는 임대아파트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15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김아무개(63·여)씨는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입주권은 받을 수 있지만 이사를 간다 해도 한 달에 몇 십만원 하는 월세와 관리비를 어떻게 감당하겠냐”며 “우리는 이곳에서 그냥 살아도 되는데 왜 주공이 우리가 살 곳을 빼앗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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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개지구 세입자들이 빌라 옥상 농성에도 불구, 틈틈이 부업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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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 납품하는 부품이라며 이름 모를 부품의 암수를 끼우고 있는 문아무개(40)씨는 긴장이 감도는 상황에서도 마치 기계처럼 부품의 암수를 맞추고 있다.
문씨는 6명의 아이를 둔 주부다. 자신과 교대해 줄 직장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연신 손을 움직인다. 그는 자식을 많이 나은 것이 죄라며 한탄했다.
문씨네는 돈도 문제지만, 학교 다니는 자녀들을 모두 전학시켜야 하고, 대식구를 받아줄 전셋집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문씨가 부업 등으로 바쁜 오후에 문씨의 아이들은 인근 교회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문씨는 “개발 지역에 대한 가이주단지를 조성해 주든지, 현실적인 이주비용을 지원해 주든지 하지 않으면 당장 길바닥에 내려앉아야 할 처지”라며 “당장 겨울인데, 만약 철거라도 들어오면 우리는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고 하소연했다.
옥상투쟁에 돌입한 한기남 주민대책위원장의 처지 또한 별다르지 않다. 2남1녀의 아버지로 건축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이마저도 옥상투쟁이 시작되면서 포기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한편, 세입자 대표들과 주공 인천본부는 지난 8일 부평구청에서 면담을 가졌다. 세입자들의 요구에 대해 주공 측은 구역 내 가이주단지 조성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주공의 매입임대와 국민임대주택 등을 알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