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관련 보도

주민 이권 다툼에 서울 재개발 '골병'

신촌지킴이 2009. 6. 29. 09:20

주민 이권 다툼에 서울 재개발 '골병'

홍원상 기자 wsho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06.29 03:34

 

소송·일정 연기 줄줄이 이해관계 따라 주민 이합집산
서부이촌동은 대책위만 11개조합·건설사는 '분양가 대립'4년이면 끝낼 사업 '하세월'

 

27일 서울 마포구 아현재개발 4구역. 아파트를 짓기 위해 철거 및 부지조성 작업이 한창이어야 할 공사 현장에는 굴착기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곳은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원 동의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공사비를 늘렸다'며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으로 지난달 말부터 작업이 전면 중단됐다. 시공사 담당자는 "언제 사업이 다시 시작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에서 진행되던 재개발·뉴타운 사업이 줄줄이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분양일정이 연기되고 조합 승인이나 뉴타운 지정 자체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하는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재개발은 주택 경기가 활황일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지만 이제 조합원들에게조차 외면받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조합원 일부가 소송을 제기해 이주·철거 작업이 중단된 서울 마포구 아현4구역 공사 현장에 포클레인이 멈춰 서 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조합원 간의 소송에 멍든 재개발

현재 재개발·뉴타운 사업이 진행 중인 대부분 지역이 개발 진행 방식과 절차를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린 주민들 간의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사업을 처음 추진할 때와 달리 본계약에서 건축비가 급증하거나 조합 임원의 비리로 주민들과 갈등을 겪는 일이 적지 않다.

서울 마포구 아현뉴타운에서 진행 속도가 가장 빨랐던 아현 3구역. 그러나 이곳 역시 최근 조합원의 동·호수 추첨과 착공을 앞두고 사업이 중단됐다. 조합원들이 임시총회를 열어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된 조합장을 해임했기 때문. 마포구 염리3구역에서는 대의원들이 '회계감사 내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며 조합을 고소했고 동작구 상도11구역은 조합설립 인가 및 재개발구역 지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국제업무지구가 조성될 용산 서부이촌동 일대는 비상대책위원회만 11개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마포의 한 뉴타운 대상지역 주민은 "조합은 설계변경을 이유로 가구당 1억원 이상을 내야 한다고 하면서 경비 내역은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며 "새 아파트를 얻으려면 돈을 추가로 지불하거나 아니면 현재 집보다 더 작은 곳으로 이사 가야 하는데 누가 찬성하겠느냐"고 말했다. 흑석뉴타운 주민들은 "현재 집값은 10억원 이상 나가지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돈은 3억~4억원에 불과하다"며 "멀쩡한 집을 무너뜨리기보다 그냥 사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일반 분양가 놓고 막판 줄다리기

사업이 막바지에 다다른 재개발 지역들도 사업진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일반 분양가 책정을 놓고 조합과 건설업체 간의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기에는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고도 청약에 성공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작년부터 달라졌다. 주변 아파트값이 떨어지고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면서 분양가 책정문제가 사업의 마지막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음달 분양 예정이었던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은 일반 분양가를 놓고 조합과 시공사 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조합측은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 분양가를 5억4400만원 선(109㎡형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건설사는 주변 아파트 시세(4억5000만~5억원 선)를 감안해 좀더 낮춰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일반 분양가가 낮으면 조합원들이 내는 공사비가 더 늘어난다.

올 상반기 분양 예정이었던 서울 동작구 본동5구역 역시 분양가 문제가 불거지며 공급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 건설사 재개발사업 담당자는 "최근 서울과 인천의 아파트들이 잇달아 청약에 성공하자 일부 조합이 일반 분양가를 높이려 하고 있다"며 "일반 분양가가 올라가면 조합원 부담이야 줄겠지만 대거 발생한 미분양으로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보다 주거환경 개선이 우선"

이런 이유로 4~5년이면 끝날 재개발 사업이 수년씩 지연되기 일쑤다. 대형 건설사의 한 주택영업본부장은 "재개발 지역 중에 소송이 한 건이라도 걸려 있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공사기간은 2~3년이면 충분하지만 주민 갈등과 각종 소송으로 10년을 넘기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재개발 사업은 주로 기존 주택과 도로 등 기반시설을 모두 헐고 새롭게 짓는 광역개발 방식으로 추진된다. 때문에 수천 가구 이상의 대규모 사업이 대부분이다. 이러다 보니 사업 당사자들끼리 이해득실이 얽히고설키는 데다, 쉽게 합의가 되지 않아 대결 양상으로 치닫기 일쑤다. 또 중대형·고가 주택으로 개발되면서 낡고 허름한 다세대 주택에 살던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이 지금까지 살던 생활터전에서 떠나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개발부지를 나눠 순차적으로 개발해가는 소규모 개발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최근 재개발·뉴타운 사업은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이 가능한 지역을 허물고 다시 짓다 보니 보상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 사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개발 사업으로 집값을 올리기보다 생활여건이 떨어지는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